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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짇날의 꽃놀이 화전놀이신라부터 조선까지 화전놀이의 유래와 변천을 거쳐 영남 여성들의 화전놀이 풍습과 준비 등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어 온 한국의 대표적인 봄철 여성 놀이입니다. 음력 3월 3일,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한 삼짇날이 되면 한국의 여인들은 아름다운 꽃을 찾아 교외나 산으로 나가 화전을 구워 먹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를 ‘화전놀이’ 또는 ‘꽃놀이’라고 불렀으며, 때로는 ‘화류(花柳)’나 ‘회취(會聚)’라고도 했습니다. 특히 진달래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즐겨 행해졌으며, 단순히 음식을 나누고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여성들만의 특별한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는 전통 놀이입니다.

 

신라부터 조선까지 화전놀이의 유래와 변천: 여성들의 봄나들이 전통

화전놀이의 기원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교남지(嶠南誌)』에 따르면 경주에는 ‘화절현(花折峴)’이라는 고개가 있는데, 신라의 궁녀들이 봄놀이를 하면서 꽃을 꺾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또한, 같은 책에서는 김유신의 맏딸 재매부인의 묘가 있는 재매곡(財買谷)에서 매년 봄, 같은 집안의 부녀자들이 모여 잔치를 베풀고 꽃과 송화로 지짐을 해 먹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라시대부터 봄철 꽃놀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화전놀이의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합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화전놀이는 더욱 성행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도성의 남녀들이 떼 지어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즐기는 풍습이 있었는데, 특히 귀족 부인들은 장막을 크게 치고 며느리들을 모아 진달래꽃이 필 때면 ‘전화음(煎花飮)’이라 하여 화전을 구워 먹으며 호화로운 봄나들이를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화전놀이가 중요한 여가 활동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화전놀이가 여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16세기의 시인 임제는 화전놀이의 낭만적인 풍경을 담은 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의 화전놀이는 주로 개인적인 친목 도모나 봄맞이 풍류의 일환이었던 반면, 여성들에게는 일 년에 한 번 허락되는 공식적인 집단 나들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달랐습니다. 조선 후기, 특히 19세기 이후에는 화전놀이의 과정과 감흥을 담은 ‘화전가(花煎歌)’가 창작되고 불리면서 여성들의 화전놀이는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문화로 발전했습니다.

 

영남 여성들의 화전놀이 풍습과 준비: 공동체의 유대감을 다지는 과정

영남 지방 여성들의 화전놀이는 봄이 되면 마을이나 문중의 여성들이 서로 연락하여 날짜를 정하고 함께 놀이를 떠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놀이를 가기로 뜻이 모이면 시어른들의 허락을 받는 것이 중요했으며, 이후에는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참여 인원은 보통 30명에서 60명 내외로, 젊은 여성부터 나이든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참여했지만, 주로 집안이나 마을에서 인정받는 중년 여성들이 놀이를 주도했습니다.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동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놀이에 필요한 음식과 경비는 화전계(花煎契)라는 공동 기금이 있으면 그 기금으로 충당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참여자들이 일정 금액을 갹출하여 마련했습니다.

 

놀이 날짜가 정해지고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여성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놀이 당일이 되면 미리 준비한 음식과 조리 도구는 물론, 현장에서 화전가를 지을 것을 염두에 두고 지필묵(紙筆墨)을 챙기기도 했습니다. 가무를 즐기기 위해 풍물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평소보다 더욱 정성껏 곱게 단장하고 아침 일찍 놀이 장소로 향했습니다. 놀이 장소는 주로 마을에서 10리 안팎의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화전놀이의 다채로운 놀이와 화전가 창작: 여성들의 끼와 재능을 펼치는 장

놀이 장소에 도착하면 여성들은 먼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만발한 진달래꽃잎을 따서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화전을 만들었습니다. 『동국세시기』에는 참꽃으로 화전을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전을 다 굽고 푸짐한 음식이 마련되면 본격적인 놀이판이 벌어졌습니다. 놀이판에서는 음주가무를 즐기고, 평소에 쉽게 나누기 어려웠던 시댁 식구에 대한 이야기나 거리낌 없는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자유롭게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윷놀이나 꽃싸움과 같은 다양한 놀이를 통해 흥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꽃싸움은 진달래꽃의 꽃술을 서로 걸고 당겨 먼저 끊어지는 사람이 지는 놀이로, 때로는 편을 나누어 승패를 가리고 술을 마시며 즐기기도 했습니다.

 

화전놀이는 여성들이 평소 숨겨두었던 다양한 재주와 끼를 마음껏 펼치는 경연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극, 엉덩글씨, 봉사놀음, 꼽사춤과 병신춤, 모의혼례, 닭싸움 등 다채로운 놀이가 펼쳐져 놀이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화전놀이는 ‘화전가(花煎歌)’라는 독특한 여성 문학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화전가는 화전놀이를 떠나기로 결정하는 과정부터 놀이를 즐기고 헤어지는 순간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는 서사적인 노래입니다. 화전가를 창작하는 방식은 여러 명이 함께 나누어 짓는 합작(合作) 방식과 각자 개인적으로 짓는 개인작 방식으로 나뉘었습니다. 완성된 화전가는 함께 감상하고 평가하며 서로의 문학적 재능을 뽐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놀이가 무르익어 해가 저물 무렵, 여성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때의 아쉬운 마음을 담은 화전가가 전해져 내려오기도 합니다. 정신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내년의 화전놀이를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여성들의 손에는 아름다운 봄꽃 한 움큼이 들려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화전놀이는 삼짇날의 꽃놀이로 시작되어 신라부터 조선까지 이어져 온 오랜 역사를 지닌 영남 여성들의 대표적인 봄철 야외 활동이자, 다양한 놀이와 화전가 창작을 통해 여성들의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중요한 전통 풍습입니다. 화전놀이는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놀이를 넘어, 여성들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문화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화전놀이에 담긴 여성들의 긍정적이고 활기찬 에너지와 공동체 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한 의미를 전달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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