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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열엿새는 귀신이 돌아다닌다고 여겨 다양한 풍습과 금기가 행해졌던 귀신날입니다. 한 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켜졌던 이 독특한 날의 유래부터 이날 행해졌던 풍부한 풍습들, 그리고 귀신날이 지닌 문화적 의미까지 자세히 살펴봅니다.

정월 열엿새, 귀신날이란?

귀신날은 한국 세시풍속에서 정월 열엿새, 즉 음력 1월 16일을 가리킵니다. 이날 귀신이 돌아다니며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우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어, 다양한 형태의 금기와 귀신을 쫓는 풍습이 행해졌습니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귀신날은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귀신닭(당)날, 달귀귀신날, 귀신단지날, 귀신다래는날, 귀신달구는날, 귀신달군날, 귀신당기날, 귀신단오날 등이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십이지신 중 원숭이날을 의미하는 신날[申日], 혹은 고마이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명칭은 귀신날 풍습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귀신날의 유래: 알려진 이야기들

귀신날 풍습이 언제, 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기록(전거)은 찾기 어렵습니다. 다만 구전되는 이야기를 통해 그 유래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해석은 정월 대보름(1월 15일)에 쌀밥(이밥)이나 부럼 등을 버리는 행위 때문에 이날 귀신들이 많이 모인다고 여긴 데서 비롯되었다는 견해입니다.

다른 한 가지 해석은 좀 더 현실적인 이유에 주목합니다. 정월 대보름까지 신나게 놀고 난 후, 특히 머슴들이나 젊은 일꾼들이 바로 다음 날부터 다시 고된 노동(예: 땔감용 나무하기)을 시작하기 싫어 '귀신날'이라는 핑계를 만들어 하루 더 쉬기 위해 생긴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날 일을 하면 귀신에 의해 병이 들거나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주장하여 어른들도 쉽게 나무라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귀신날을 '머슴들이 만든 날'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경남 고성 지역에서는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며느리들에게 하루 더 휴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라는 구전도 전해집니다. 이처럼 귀신날 유래에 대한 이야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명절 이후의 휴식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귀신날의 다양한 풍습과 금기

귀신날에는 귀신의 접근을 막고 한 해의 재액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가지 풍습과 금기가 지켜졌습니다.

일을 쉬고 외출을 삼가는 금기

귀신날의 가장 기본적인 풍습은 활동을 최소화하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날 일을 하면 귀신이 붙어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믿었습니다. 농촌에서는 산에 나무하러 가지 않았고, 어촌에서는 고기잡이(출어)를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외출을 극도로 삼갔습니다. 이는 여자가 바깥에 나가면 치마꼬리나 머리끝에 귀신이 붙어 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날 일을 하면 과부가 된다는 속설도 있어 여성들은 더욱 집안에서 조신하게 지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정월 16일을 시골 풍속에서 꺼리는 날(기일, 忌日)로 여겨 활동하거나 나무로 만든 물건을 들여오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러한 금기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귀신 퇴치 풍습

귀신날 저녁 무렵에는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귀신을 적극적으로 쫓아내는 풍습이 행해졌습니다. 주로 불이나 소리를 이용한 주술적인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 불과 연기 활용: 저녁 해가 진 후 대문간에서 고추씨, 목화씨, 삼씨,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태워 독하고 매운 냄새와 연기를 피웠습니다. 귀신이 이러한 독한 기운을 싫어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소리 활용 (폭죽 등): 대나무를 태우거나 뽕나무 숯가루로 만든 폭죽을 터뜨려 큰 소리를 냈습니다. 대나무가 탈 때 나는 '탁탁' 터지는 소리나 폭죽 소리가 귀신을 놀라게 하여 도망가게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풍습 때문에 귀신날을 귀신불이나 귀신달굼불을 피운다고 하여 귀신달구는날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불을 이용한 퇴치법은 냄새와 소리로 접근을 막을 뿐만 아니라, 불로써 귀신 자체를 소멸시킨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귀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밤에는 집안으로 들어온 귀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취했습니다.

  • 신발 감추기: 밤에 귀신이 내려와 신발을 신어보고, 제 발에 맞으면 그 신발을 신고 간다고 믿었습니다. 귀신에게 신발을 뺏기면 신발 주인이 불길하거나 심지어 죽는다고 여겨, 자기 전에 신발을 감추거나 뒤집어 놓았습니다. 신발을 훔쳐 가는 귀신은 야광귀(夜光鬼)라고도 불렸으며, 지역에 따라 신발귀신, 달귀귀신, 또는 앙괭이, 양괭이, 야귀할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 체나 바구니 걸어놓기: 대문에는 바구니를 걸어놓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귀신이 집안에 들어오기 전에 체의 수많은 구멍을 모두 세어야 하는데, 구멍을 다 세기도 전에 닭이 울어 날이 밝으면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원리로 키를 거꾸로 세워놓거나 솔가지 잎을 세게 만드는 장치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체에 바늘을 꽂아 귀신을 찔러 퇴치한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지역별 귀신날 풍습의 차이

귀신날의 날짜나 명칭, 그리고 구체적인 풍습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납니다.

  • 날짜 및 명칭: 전국적으로 정월 16일이 일반적이지만, 14일이나 15일로 여기는 지역도 있으며, 정월 초하루에 귀신 퇴치 풍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경남 사천/고성 지역에서는 정월 16일을 암고마이날, 17일을 숫고마이날이라 하여 이틀간 일을 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 다양한 퇴치 방법:
    •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는 "귀신 대가리 깨뜨린다"며 방아를 찧거나, "귀신 목 자른다", "귀신 골통 판다"며 칼질을 하거나 나무를 베는 등 과격한 행동으로 귀신을 쫓기도 했습니다.
    • 가시가 많은 엄나무탱자나무 가지, 또는 왼새끼를 꼬아 대문이나 방문에 걸어 귀신을 물리친다고 믿는 지역(강원도, 경북 등)도 있습니다.
    • 경기도 김포와 강원도 평창에서는 신발뿐만 아니라 밤에 옷도 숨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 경북 지역에서는 콩볶기를 하여 볶은 콩이나 잡곡을 집안이나 대문에 던져 귀신을 퇴치하는 주술적 행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콩이 주술적인 힘을 가졌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 기타 풍습: 전북 부안의 어촌에서는 귀신날에 고기가 어망을 넘으면 파도가 덮친다는 속신 때문에 그물을 치지 않았습니다. 경기도 고양에서는 정월 16일 새벽 일찍 일어나 까마귀나 독수리(액운을 몰고 온다고 믿음)를 쫓아내거나, 서낭신에게 오곡밥 등을 대접하며 재난을 가져가 달라고 빌기도 했습니다.

귀신날이 지닌 사회적, 문화적 의미

귀신날은 단순히 미신적인 두려움 때문에 생긴 날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한 해를 무사하고 평안하게 보내고자 했던 강한 염원을 담고 있는 날입니다.

정월 초하루 설날부터 시작하여 대보름까지는 새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며 다양한 신들께 제를 올리고 복을 빌며 재액을 물리치는 신성한 기간으로 여겨졌습니다. 귀신날은 이러한 신성 기간이 끝난 직후 찾아오는 날입니다.

따라서 정월 열엿새를 귀신날로 정하고 이날 귀신으로 인한 재액을 집중적으로 퇴치하는 풍습을 행함으로써, 한 해의 첫 시작인 정월을 잘 마무리하고 나머지 열한 달 또한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강화했습니다. 귀신날 풍습은 개개인과 마을 공동체의 안녕과 평안을 지키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염원이 담긴 사회 안전 장치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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