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사월 초파일 축제, 연등회와 관등놀이, 고려시대 연등회 성행, 조선시대 연등 쇠퇴와 부활: 한국 전통 민속 명절 초파일
the customs of Korea 2025. 4. 21.음력 사월 초파일 축제는 불교의 개조인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자, 연등회와 관등놀이를 중심으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이 함께 즐겨온 민속 명절입니다. 특히 고려시대 연등회 성행은 초파일을 국가적인 축제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초파일은 음력 4월 8일로, 부처님 오신 날, 석탄일(釋誕日)이라고도 불리며 불교 4대 명절 중 가장 큰 규모의 축제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불교적인 의미를 넘어, 연등 행사와 다양한 민속놀이가 어우러져 온 국민이 함께 즐기는 전통 명절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연등회와 관등놀이
초파일의 가장 대표적인 풍습은 단연 연등(燃燈) 행사입니다. 연등은 불전에 등을 밝혀 자신의 마음을 밝고 맑게 하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기원하는 불교 의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불교의 연등 공양은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민간의 연등 행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초파일을 온 국민의 축제로 만들었습니다. 등을 밝히는 행위는 어둠을 밝히고 지혜를 상징하며, 연등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 관등(觀燈) 또한 중요한 풍습입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 시대에 매년 정월 15일에 관등 행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불교적인 연등 행사 이전부터 민속적인 연등 풍습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불교와 융합되어 오늘날의 성대한 초파일 연등 축제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고려시대 연등회 성행
고려 시대에는 태조의 훈요십조에 따라 연등회가 국가적인 행사로 매우 성대하게 시행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정월 15일에 연등 행사가 열렸으나, 시대에 따라 날짜가 바뀌기도 하면서 고려 멸망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연등회에 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하며, 왕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였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문종, 숙종, 의종, 명종, 충렬왕, 충숙왕, 충혜왕, 공민왕 등 여러 왕대에 걸쳐 연등회가 성대하게 거행되었으며, 흥왕사, 봉은사, 신호사 등 주요 사찰에서 대규모 연등 도량이 열리고 거리 곳곳에 형형색색의 등이 밝혀졌습니다. 심지어 만 개의 등을 밝히는 만등회도 열릴 정도로 연등회는 고려 사회의 중요한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고려 시대의 연등회는 불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천지신명에게 기원하는 국가적인 의례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연등 쇠퇴와 부활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연등회의 국가적인 의미는 점차 사라지고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1415년(태종 15년)에는 초파일 연등이 일시적으로 중지되기도 했습니다. 정월 15일의 연등은 수륙재(水陸齋)라는 불교 의식으로 대체되기도 하였습니다.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태조는 이를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시행하여 호국 신앙의 성격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초파일 연등은 불교 교단과 신도들에 의해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비록 국가적인 행사로서의 위상은 약화되었지만,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고 지혜와 광명을 기원하는 불교적인 의미와 함께 민간의 세시 풍속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습니다.
민속 명절로 자리매김
초파일은 단순히 불교 행사를 넘어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 명절로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이는 연등 행사가 고대부터 이어져 온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 대보름의 농경 의례와 자연스럽게 습합되었기 때문입니다. 등을 밝히는 행위는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며, 이를 농경 사회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와 결합시킨 우리 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초파일은 특정 종교를 넘어 모든 이들이 함께 즐기는 보편적인 명절로 자리 잡았으며, 서양의 크리스마스가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된 것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불회와 탑돌이 의례
초파일에는 신도들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것 외에도 다양한 불교 의례에 참여합니다. 대표적인 의례 중 하나가 관불회(灌佛會)입니다. 관불회는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아홉 마리 용이 나타나 뜨거운 물을 부어 목욕시켰다는 설화에 따라, 이날 탄생불(誕生佛)을 모셔놓고 신도들이 돌아가면서 물을 부어 목욕시키는 의식입니다. 이는 아기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탑돌이 역시 초파일의 중요한 불교 의례 중 하나입니다. 신도들은 탑 주위를 돌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소원을 빌며, 복을 기원합니다.
파일놀이와 만석중놀이
초파일에는 불교적인 행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속놀이도 즐겼습니다. 이날 행해지는 놀이를 통칭하여 파일[八日]놀이라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형형색색의 등과 불빛, 그림자를 이용한 만석중놀이가 유명했습니다. 만석중놀이는 영등(影燈)놀이라고도 불리며, 등 안에 갈이틀을 만들어 종이에 그린 사냥 그림을 붙여 등이 바람에 돌아가면서 그림자가 비치게 하는 놀이입니다. 이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며, 초파일 축제의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이 외에도 아이들은 등대 밑에 송편, 검은콩, 나물 등을 늘어놓고 즐기는 놀이를 하거나, 느티떡과 볶은 콩을 먹으며 물장구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날 역할과 장터
어린이날이 따로 없었던 과거에는 초파일이 어린이날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초파일이 되면 절 앞에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용품을 파는 장터가 크게 섰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신기한 장난감을 사거나 얻으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는 초파일이 불교 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축제였음을 보여줍니다.
현대적 변화 제등행렬
오늘날 초파일의 여러 가지 놀이와 행사는 제등행렬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변화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관등놀이가 폐지된 이후, 광복 후에 이를 대신하여 제등행렬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현대의 제등행렬은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등과 코끼리, 가면, 풍물패 등이 어우러져 화려하고 현대적인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며 과거 초파일의 흥겨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등의 의미 또한 과거에는 등불을 밝히는 행위 자체를 의미했지만, 오늘날에는 등을 다는 행위로 바뀌었으며, 다양한 모양의 등 대신 연꽃 모양의 연등이 주를 이루는 추세입니다. 이는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청정함을 강조하는 불교적인 의미가 더욱 부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음력 사월 초파일은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이자, 지혜와 광명을 기원하는 연등회와 관등놀이가 중심이 되는 날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가 국가적인 행사로 크게 성행했으며,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부침을 겪었지만 민간의 민속 명절로 굳건히 자리매김했습니다. 관불회와 탑돌이 등의 불교 의례와 함께 파일놀이와 만석중놀이 같은 민속놀이가 어우러져 다채로운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했으며, 과거에는 어린이날의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 현대에는 제등행렬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으며, 불교적인 의미와 함께 우리 민족의 중요한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