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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가고 가을을 맞는 처서농사의 풍흉을 좌우하는 처서 날씨에 따라 한 해 농사의 결실이 달라질 수 있어 농민들에게 중요한 절기였으며, 처서 무렵의 다양한 생활 풍습을 통해 계절의 변화에 적응해 온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처서(處暑)는 24절기 중 열네 번째 절기로, 입추와 백로 사이에 위치하며 양력 8월 23일 무렵, 음력 7월 15일 이후에 찾아옵니다. 이는 여름의 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는 시기를 의미하며,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습니다. 음력 7월의 중순에 해당하는 처서는 자연의 변화를 섬세하게 감지하고 계절의 순환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농사의 풍흉을 좌우하는 처서 날씨: 맑은 햇살과 처서비의 의미

농경 사회에서 처서는 한 해 농사의 풍흉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처서 무렵은 벼의 이삭이 패는 때인데, 이때 맑은 날씨와 풍부한 햇볕을 받아야 벼가 제대로 성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는 속담은 처서 무렵 벼의 왕성한 성장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때의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처서에 내리는 비는 농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처서비[處暑雨]’라고 불리는 이때의 비는 곡식의 흉년을 가져온다고 믿어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 등의 속담이 전해져 옵니다. 이는 처서에 비가 내리면 벼의 수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썩어버려 수확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경험적인 지혜가 반영된 것입니다. 맑은 바람과 햇볕이 나락을 잘 여물게 하는 반면, 처서에 내리는 비는 오히려 곡식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전국적으로 나타나는데,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백석을 감한다.’라고 하여 처서비의 해로움을 강조했습니다.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는 대추 농사에 미치는 영향을 염려하여 ‘처서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라는 속담이 전해집니다. 대추가 맺히기 시작하는 처서 무렵에 비가 오면 열매가 제대로 맺지 못해 혼수를 준비해야 하는 큰 애기들의 걱정이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처서 날씨는 농사의 풍흉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으며, 특히 처서비에 대한 농민들의 깊은 관심과 우려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처서 무렵의 다양한 생활 풍습: 계절 변화에 따른 삶의 지혜

처서는 농사일 외에도 다양한 생활 풍습과 관련된 시기였습니다.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하는 것이 대표적인 풍습입니다. 따가운 여름 햇볕이 누그러지고 풀의 성장이 멈추는 처서가 벌초의 적기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마철 습기로 인해 눅눅해진 옷이나 책 등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나 그늘에 말리는 음건(陰乾)도 이 시기에 많이 행해졌습니다. 맑고 건조한 가을 날씨를 이용하여 생활용품을 관리하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여름 동안 기승을 부리던 모기나 파리 등의 해충도 점차 사라져 갑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라는 속담은 처서의 서늘함 때문에 모기의 활동이 둔화되는 현상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입니다. 대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타나 가을의 정취를 더합니다. 또한,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에 행해졌던 농부들의 호미씻이[洗鋤宴]도 처서가 지나면 대부분 마무리되어 농사철 중 비교적 한가한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를 빗대어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칠월은 어정거리며 보내고 팔월은 건들거리며 보낸다는 뜻으로, 농사일이 비교적 여유로워진 농촌의 풍경을 익살스럽게 나타냅니다.

 

지역별로 전해지는 처서 날씨와 농사 속담: 삶의 경험이 담긴 지혜로운 표현

처서와 관련된 속담과 풍습은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오며, 각 지역의 특성과 농업 환경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경남 통영의 속담이나 전북 부안과 청산의 속담 외에도 다양한 표현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경험한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서 날씨에 대한 다양한 속담들은 단순히 날씨를 예측하는 것을 넘어, 농작물의 생육과 수확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나아가 삶의 교훈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처서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지 않고 인위적인 변화를 꾀하면 오히려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교훈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처서는 더위가 가고 가을을 맞는 절기로, 농사의 풍흉을 좌우하는 날씨에 대한 농민들의 깊은 관심이 반영되어 다양한 농점이 전해져 내려오며, 처서 무렵의 생활 풍습 속에는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처서는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절기를 넘어, 농경 사회의 중요한 가치와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소중한 전통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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