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유산은 다채로운 전통 풍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한국인의 삶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그중에서도 설날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 중 하나로, 조상 숭배, 가족 간의 화합, 그리고 다가오는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다양한 풍습들이 전해 내려온다. 본고에서는 설날 밤에 행해지던 독특한 풍습인 ‘야광귀 쫓기’에 대해 민속학과 인류학적 관점을 융합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야광귀 쫓기는 단순한 미신적 행위를 넘어, 당시 사회의 문화적 맥락, 인간의 심리적 기제, 그리고 공동체의 사회적 기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야광귀 쫓기의 정의 및 명칭 고찰
야광귀 쫓기는 설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들의 신발을 훔쳐 간다고 믿어지는 귀신인 야광귀를 쫓기 위해 행해지던 풍습이다. 주로 집안 곳곳에 체를 걸어두거나, 머리카락을 태워 마당에 뿌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풍습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충청북도 음성에서는 ‘달귀귀신’,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는 ‘야귀할멈’이라고도 칭해졌다.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야광귀는 ‘야유광(夜遊狂)’, ‘야광신(夜光神)’, ‘앙광이’ 등 다양한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는 야광(夜光)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한 두 가지 흥미로운 설을 제시한다. 첫 번째 설은 야광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몹시 마른 귀신을 뜻하는 ‘구귀(癯鬼)’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한자 ‘야(夜)’의 음과 ‘구(癯)’의 훈이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한 해석이다. 그러나 유득공은 이에 대해 약왕(藥王)의 발음이 와전되어 야광이 되었다고 반박한다. 약왕의 흉측한 모습 때문에 아이들이 두려워했고, 이러한 공포감을 이용하여 아이들을 일찍 재우려는 의도에서 야광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이는 단순히 귀신의 존재를 믿는 차원을 넘어, 당시 사회의 언어적 유희와 교육적인 목적까지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 본 야광귀 쫓기 풍습의 변천
조선시대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다양한 문헌들은 야광귀에 대한 믿음과 그를 쫓기 위한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증명한다.
『경도잡지』에서는 야광귀가 밤에 사람들의 집에 찾아와 신발을 훔쳐 가는 것을 좋아하며, 이때 신발을 잃은 사람은 한 해의 운수가 불길하다고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아이들은 신발을 숨기고 야광귀가 오기 전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며, 어른들은 장대 등에 체를 걸어두어 야광귀의 접근을 막고자 했다. 체의 수많은 구멍을 야광귀가 세다가 지쳐 포기하고 새벽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내용은 당시 사람들의 순박한 믿음을 잘 보여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역시 야광귀가 설날 밤 민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신고 가면 그 신발의 주인이 불길하다고 여겼다고 전한다. 이러한 믿음은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신발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잠들게 만들었으며, 체를 대청 벽이나 섬돌과 뜰 사이에 걸어두는 풍습으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동국세시기』에서도 야광귀의 정체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없으나, 혹시 약왕의 음이 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야광귀에 대한 믿음이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닌, 다양한 해석과 상상력을 동반한 문화적 현상이었음을 시사한다.
『세시풍요(歲時風謠)』에서는 야광귀를 쫓기 위해 저녁에 마당에서 머리카락을 태우고 그 재를 뿌리는 풍습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체를 걸어두는 방식과는 또 다른 형태의 적극적인 퇴치 행위로, 머리카락이라는 개인적인 물건을 매개로 액운을 쫓으려는 믿음을 반영한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는 야광귀를 ‘야광신’이라 칭하며 ‘앙광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하며, 설날뿐만 아니라 정월 대보름에도 야광귀가 내려온다고 믿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는 야광귀에 대한 믿음이 특정 시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새해를 맞이하는 전반적인 불안감과 소망을 반영하는 지속적인 문화적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현대의 민속조사보고서인 『한국민속종합보고서(韓國民俗綜合報告書)』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세시풍속』에도 야광귀를 쫓는 풍습이 조사되어 있다. 이 보고서들은 과거의 기록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해동죽지』에서 언급된 것처럼 설날뿐만 아니라 대보름에도 야광귀를 쫓기 위한 풍습이 행해졌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준다. 특히 경기도 김포에서는 몸에 맞는 옷이 있으면 옷도 가져간다는 변용된 사례가 발견되는데, 이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믿음의 내용이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해 왔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민속학적 관점: 상징과 의미의 해석
민속학적 관점에서 야광귀 쫓기 풍습은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야광귀가 훔쳐 가는 신발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개인의 발과 연결되어 이동과 사회생활을 상징한다. 새해의 시작에 신발을 잃는다는 것은 한 해 동안의 운세가 막히고 불운이 닥칠 것이라는 불안감을 반영한다. 따라서 신발을 숨기거나 야광귀를 쫓는 행위는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다가오는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체를 걸어두는 행위는 야광귀를 쫓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체의 수많은 구멍은 시각적으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를 제공하여 야광귀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지치게 만든다고 믿었다. 일본의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은 체의 구멍을 마치 무수히 많은 눈으로 해석하며, 야광귀에게 체가 더 공포스러운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마치 방상씨의 네 개의 눈이 악귀를 쫓아내는 것과 유사한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많은 눈은 강력한 힘과 능력을 상징하며, 야광귀는 이러한 시각적인 압도감에 굴복하여 도망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머리카락을 태우는 행위 역시 액운을 쫓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머리카락은 신체의 일부로서 개인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불에 태워 재를 뿌리는 행위는 부정적인 기운을 소멸시키고 정화하는 의례로 해석될 수 있다.
야광귀의 정체에 대한 다양한 해석 또한 민속학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구귀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굶주림과 가난의 고통을 겪었던 과거 사회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약왕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흉측한 외모에 대한 공포심이 야광귀라는 존재를 만들어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은 야광귀라는 존재가 단순히 실재하는 귀신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불안, 공포, 그리고 상상력이 투영된 문화적 산물임을 시사한다.
인류학적 관점: 사회적 기능과 문화적 의미
인류학적 관점에서 야광귀 쫓기 풍습은 개인의 심리적 안정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사회적 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설날은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요한 명절이다. 야광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체를 걸거나 머리카락을 태우는 과정은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야광귀 이야기는 일종의 교육적인 기능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밤늦게까지 깨어 있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유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수 있으며, 위험한 존재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또한 야광귀를 쫓는 과정에서 어른들이 보여주는 적극적인 행동은 아이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안전하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야광귀 쫓기 풍습은 또한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며, 전통 사회에서는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의례적 행위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자 했다. 야광귀를 쫓는 행위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다가오는 한 해에 대한 희망과 긍정적인 기대를 불어넣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야광귀라는 존재는 사회적 규범을 강화하는 역할도 했을 수 있다. 신발을 훔쳐 가는 야광귀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의 물건을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하는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또한 설날이라는 특별한 날에 악귀가 활동한다는 믿음은 사람들이 이날 더욱 조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설날 밤의 야광귀 쫓기 풍습은 단순한 미신적 행위를 넘어, 한국인의 전통적인 세계관, 사회적 관계, 그리고 심리적 기제를 복합적으로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민속학적 분석을 통해 우리는 이 풍습에 담긴 다양한 상징적 의미와 그 속에 내재된 사람들의 소망과 불안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인류학적 관점을 통해 이 풍습이 개인의 심리적 안정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 기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 야광귀 쫓기 풍습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지만, 이 풍습에 담긴 문화적 가치와 의미는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있다. 이는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야광귀 쫓기와 같은 전통 풍습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는 한국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참고문헌
경기도 세시풍속, 2001년
京都雜志, 東國歲時記, 歲時風謠
朝鮮の鬼神, 1930년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京畿道 篇, 1978년
조선대세시기Ⅰ,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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