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차가운 겨울이 물러가고 싱그러운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우리 조상들은 산과 들로 나가 봄을 만끽하는 특별한 풍습을 즐겼습니다. 바로 답청(踏靑)인데요. 답청은 이름 그대로 '푸를 청(靑)'자를 써서 푸른 새싹이나 풀이 돋아난 들판을 밟으며 봄의 경치를 즐기는 야외 활동을 의미합니다. 봄을 활짝 열었던 전통 풍습, 답청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니다.

봄을 밟는 즐거움, 답청(踏靑)이란?

답청은 봄기운이 절정에 달하는 음력 삼월 삼짇날이나 청명일 무렵에 행해졌던 대표적인 봄맞이 풍속입니다. 사람들이 경치가 좋은 산이나 계곡, 또는 푸른 들판을 찾아가 따뜻한 봄 햇살 아래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봄의 정취를 즐기는 활동 전반을 일컫습니다.

'푸른 풀을 밟는다'는 의미에서 답백초(踏白草)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특히 삼월 삼짇날은 아예 답청절(踏靑節)이라고 불릴 만큼 답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답청절은 긴 겨울을 보내고 찾아온 새봄을 기뻐하며 자연 속에서 새롭게 돋아나는 푸른 풀을 밟고 아름다운 봄꽃을 감상하며 봄을 즐기는 날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단순히 유희를 넘어,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고 봄의 생명력을 느끼며 한 해의 활력을 얻으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풍습이었습니다.

답청 풍습의 유래: 중국에서 한국으로

답청 풍습의 기원은 중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당나라송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중국에서는 청명절에 조상의 묘를 돌보는 묘제(墓祭)를 마친 후 남녀가 함께 들에 나가 술을 마시며 즐기거나 투백초(鬪백초)라는 풀잎 줄기를 끊어 승부를 겨루는 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천록각식록(天錄閣識錄)』과 같은 문헌을 보면, 당시 장안 근교에서 답청을 즐기던 모습을 묘사하며 "북을 가지고 교외에서 즐기며 아침에 가서 저녁에 돌아온다. 이것을 영부(迎富, 부를 맞이한다)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답청이 단순한 나들이를 넘어, 봄의 기운을 받아들여 한 해의 복과 부를 기원하는 의미도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중국의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우리의 고유한 절기 문화와 결합하여 삼짇날 답청과 같은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 문헌 속 답청 기록

답청 풍습은 우리나라 문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답청이 우리 민간에서 오랫동안 즐겨왔던 풍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김인후의 '상사답청' 시

조선 중기의 학자 김인후(金인후)의 문집인 『하서전집(河西전집)』에는 삼짇날(상사일, 上巳日) 답청을 주제로 한 '상사답청(上巳踏靑)'이라는 시가 실려 있습니다. 이 시는 삼짇날 답청의 흥겨운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有興裁春服(유흥재춘복) 흥이 나서 봄옷을 마련했으니,
無妨作晩遊(무방작만유) 거리낌 없이 늦도록 노닐 것이네.
周家觴曲水(주가상곡수) 주나라는 곡수(굽이치는 물)에 잔을 띄웠고
晉客詠淸流(진객영청류) 진나라 나그네는 청류(맑은 물)에서 시 읊었네.
陌上紅方嫩(맥상홍방눈) 언덕 위 꽃은 붉고 어린 싹이 고운데
郊邊綠正柔(교변록정유) 들녘 풀은 푸르러 나풀거리네
……

 

이 시는 봄옷을 차려입고 곡수연(곡수에서 잔을 띄우고 시를 읊던 옛 연회)이나 청류에서 시를 읊던 옛 고사를 언급하며, 삼짇날 들판의 푸른 풀과 붉은 꽃 사이에서 봄을 즐기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동국세시기 기록

조선 후기 문헌인 『동국세시기(東국세시기)』 3월 조에도 답청에 대한 기록이 나타납니다. "도성 풍속에 산이나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것을 꽃놀이(花柳)라고 한다. 이것은 상사일(上巳日: 삼짇날)에 답청하는 데서 유래한 풍속이다"라고 명시되어 있어, 서울을 비롯한 도성에서도 삼짇날에 산과 계곡으로 나가 봄 경치를 즐기는 답청 풍습이 있었으며, 이를 꽃놀이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답청이 봄꽃을 감상하는 화류(花柳) 놀이와도 연결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답청과 함께 즐긴 봄의 시절음식

답청을 나갈 때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자연 속에서 즐겼습니다. 특히 봄의 정취를 담은 시절음식이 답청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봄꽃으로 만든 화전(花煎)

답청의 대표적인 음식은 화전(花煎)입니다. 진달래나 개나리 등 식용 가능한 봄꽃잎을 따서 찹쌀가루 반죽에 올려 기름에 지져 먹는 음식입니다. 특히 삼짇날 무렵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는 진달래를 이용한 진달래 화전이 유명했습니다. 참기름을 발라가며 노릇하게 지져낸 화전은 아름다운 색깔과 은은한 꽃 향기, 쫄깃한 식감이 어우러져 답청의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화전을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는 과정 자체가 화전놀이라는 유쾌한 놀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봄의 기운 담은 쑥떡

화전과 더불어 답청에 즐겨 먹었던 음식은 쑥떡(艾餠)입니다. 봄에 돋아나는 부드러운 어린 쑥잎을 뜯어 찹쌀가루와 함께 쪄서 맵쌀가루와 섞어 찧어 만든 떡입니다. 쑥 특유의 향긋한 내음은 봄의 싱그러움을 느끼게 하며,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믿었습니다.

전통 풍습 답청의 의미

답청 풍습은 단순히 나들이를 가는 것을 넘어, 우리 조상들이 자연의 변화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삶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줍니다. 긴 겨울의 끝을 알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의 기운을 느끼며, 푸른 새싹과 아름다운 꽃들을 통해 생명력과 활력을 얻고자 했던 조상들의 소박하면서도 깊은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함께 자연 속에서 음식을 나누고 놀이를 즐기며 공동체의 유대감을 다지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도 했습니다. 답청은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자연과 교감하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삶의 활력을 충전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봄맞이 문화였습니다.

 

참고문헌
세시풍속, 2001년 ~ 2003년
한국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1991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1, 1991년
東國歲時記, 天錄閣識錄, 河西全集
崔常壽. 歲時風俗. 瑞文堂, 1988년
李允熙. 우리나라 세시기. 金龍圖書株式會社, 1998년
댓글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