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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적인 명절 중 하나인 백중은 #백중의_다채로운_얼굴을 지니고 있으며, 농민들에게는 #흥겨운_농촌_축제_백중놀이의 날이었다. 또한, 조상들을 추모하는 #조상을_기리는_마음_망혼의례가 행해지는 의미 깊은 날이기도 했다. 음력 7월 15일, 계절적으로 가을의 문턱에 해당하는 백중은 단순한 휴식일을 넘어, 공동체의 화합과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며 다양한 풍습과 놀이가 펼쳐지는 특별한 날이었다. 이 글에서는 제시된 자료를 바탕으로 백중의 다양한 이름과 의미, 농촌 축제로서의 면모, 조상 숭배 의례, 그리고 지역별로 나타나는 다채로운 풍습들을 한국 전통 관습의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백중의_다채로운_얼굴: 여러 이름에 담긴 의미와 시대적 변화

백중은 예로부터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이는 백중이 지닌 여러 측면과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다. 가장 대표적인 이름인 ‘백중(百中)’ 외에도 ‘백종(百種)’, ‘머슴날’, ‘망혼일(亡魂日)’, ‘중원(中元)’, ‘호미씻는날’, ‘축수한날’ 등 다양한 이칭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이름들은 백중이 농업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백중(百中)’이라는 이름은 불가(佛家)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탄생, 출가, 성도, 열반일을 합한 4대 명절에 더하여 우란분재(盂蘭盆齋)가 행해지는 날을 5대 명절로 꼽는데, 백중은 바로 이 우란분재가 열리는 날이다. 우란분은 돌아가신 부모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베풀고 공양하는 불교 의식으로, 백중이 망혼일의 성격을 띠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된다. 또한, ‘백중(白中)’이나 ‘백중(百衆)’과 같은 이칭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백중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즐기는 날이었음을 시사한다.

농업 사회에서 백중은 세벌 김매기가 끝난 후 여름철 농사일의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호미씻는날’이나 ‘축수한날’과 같은 이름은 농민들의 노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머슴날’이라는 이름은 백중이 머슴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날이었음을 강조한다. 백중날에는 머슴들에게 새 옷을 해주고 휴가를 주어 백중장에서 하루를 즐기도록 배려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농업 노동력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던 머슴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한국 전통 사회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라북도 전주에서는 ‘머슴명일’, 경상남도 함안에서는 ‘상놈명절’이라고 불린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도교의 영향을 받아 음력 7월 15일을 ‘중원(中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원은 하늘의 신에게 복을 빌고 땅의 신에게 죄를 사하며,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날로 여겨졌다. 이러한 중원의 의미는 백중이 망혼일로서 조상 숭배 의례가 행해지는 중요한 날로 자리매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백중의 명칭과 의미 변화를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17세기 김육의 『송도지』에는 7월 15일을 백종이라 부르며 남녀가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삼혼(三魂)을 부르는 우란분재의 풍습을 기록하고 있다. 이후 여러 문헌에서 ‘백종(百種)’ 또는 ‘백중(白中)’으로 혼용되어 사용되다가 20세기 초 장지연의 『조선세시기』에서는 속칭 백종절이라 하고 백중이라 하였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이름들이 혼재되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백종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백 가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라거나,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진열하는 데서 유래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문헌에서는 황당무계한 설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처럼 백중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변화해왔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농민들의 휴식과 축제, 그리고 조상 숭배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한국 전통 사회의 대표적인 명절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흥겨운_농촌_축제_백중놀이: 공동체의 화합과 노동의 즐거움을 나누다

백중은 단순히 쉬는 날을 넘어, 농민들이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다양한 놀이를 즐기는 흥겨운 축제의 날이었다. 특히 두레와 같은 농촌 공동체 조직에서는 백중을 맞아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노동의 피로를 풀며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했다. 이러한 백중놀이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농민들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백중놀이의 대표적인 형태는 ‘두레먹기’이다. 이는 두레 일꾼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고된 농사일을 함께 해온 동료들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의미를 지닌다. 백중에 열리는 두레먹기는 일꾼들에게 모처럼의 휴식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지역에 따라 백중놀이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경기도에서는 ‘호미걸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행해졌다. 이는 호미나 농기구를 농기(農旗)의 줄에 주렁주렁 매달아두는 의례로, 농사일의 마무리를 기념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호미걸이는 주로 시원한 정자나무 아래나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곳에서 행해졌으며, 백중놀이와 함께 진행되기도 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풋굿’이라는 이름의 백중놀이가 성행했다. ‘풋굿’은 세벌 논매기가 끝난 후 백중에 농민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즐기는 잔치로, 특히 양반 출신의 동성 마을에서는 머슴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가 강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나다리’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풋굿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에서는 김매기의 ‘김’에서 유래한 ‘질먹기’라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김매기를 끝내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잔치로, 백중날에 행해졌다. 특히 이날은 ‘머슴의 생일’이라고 하여 주인집에서 머슴들에게 특별한 상을 차려주어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노동의 피로를 풀도록 했다.

이 외에도 충청도에서는 백중보다 칠석에 두레먹기가 활발했으며, 전라도에서는 ‘술멕이’라는 이름으로 술과 음식을 나누는 잔치가 열렸다. ‘술멕이’는 마을 풍물패가 동원되어 당산굿을 치고 동네 잔치를 벌이는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잔치 전에는 마을 청소도 이루어졌다. 호남이나 호서 지방에서는 ‘들돌들기’와 같은 힘겨루기 놀이가 백중놀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는 마을 청장년들이 모여 돌을 들어 올리며 힘을 겨루고 장사를 뽑는 놀이로, 공동체의 활력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경남 밀양 감천의 백중놀이에서는 힘센 머슴을 뽑아 좌상과 우상으로 삼기도 했다.

백중날에는 씨름 대회도 자주 열렸다. 장터에서는 상인들이 시장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씨름 대회를 개최했으며, 머슴들은 이에 참가하여 자신의 힘을 겨루고 승리하면 송아지를 상품으로 받기도 했다. 이는 백중날 머슴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이처럼 백중놀이는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와 명칭으로 나타났지만, 농민들이 함께 모여 노동의 고됨을 잊고 즐거움을 나누며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조상을_기리는_마음_망혼의례: 우란분재와 민간 신앙의 조화

백중은 단순히 농민들의 축제일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조상들의 영혼을 기리는 망혼일로서의 의미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는 불교의 우란분재와 한국 전통 사회의 조상 숭배 사상이 결합되어 나타난 풍습이다.

불교의 우란분재는 효심이 깊은 목련존자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부처의 가르침대로 여러 스님들에게 음식을 공양한 데서 유래한다. 이러한 우란분재의 의미는 백중을 망혼일로 여기고 조상들의 영혼을 천도하는 불교 의례를 행하는 풍습으로 이어졌다. 절에서는 백중날에 백 가지의 꽃과 과일을 갖추어 우란분을 설치하고 불공을 드려 조상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민간에서도 백중은 망혼일로 여겨져 각 가정에서는 조상들의 혼을 기리는 다양한 의례를 행했다. 중원 달밤에 채소, 과일, 술, 밥 등을 정성껏 차려놓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혼을 불러 넋을 위로하고 복을 빌었다. 이는 한국 전통 사회의 강한 가족애와 조상 숭배 사상을 반영하는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송도지』의 기록처럼, 백중날에 삼혼(三魂)을 불러 우란분재의 고풍을 따르는 풍습은 불교적인 요소와 전통적인 혼령 숭배 사상이 결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또한, 충청도 풍속에는 백중날에 노소가 저자로 나와 마시고 먹으며 즐기는 것 외에도 경사대부 집에서 초하룻날이나 보름날에 올벼를 사당에 천신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백중이 단순한 망혼일이 아닌, 풍년을 기원하고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기도 했음을 시사한다.

서울 사람들은 백중절에 성대한 음식을 차려 산에 올라가 가무를 즐겼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는 백중이 조상 숭배 의례와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날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백중은 불교의 우란분재와 민간의 조상 숭배 풍습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국 전통 사회의 중요한 망혼 의례로 자리매김했다.

#지역_색깔_가득한_백중_풍습: 다채로운 형태로 전승되는 전통 문화

백중은 전국적으로 행해진 명절이지만, 각 지역의 특색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풍습과 놀이가 전승되어 왔다. 이러한 지역별 백중 풍습은 한국 전통 문화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술멕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전해진다. 이는 백중날이나 칠석날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잔치로, 풍물패가 동원되어 당산굿을 치고 마을 잔치를 벌이는 형태로 진행된다. 술멕이는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인 금강을 기준으로 남쪽 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풍습으로, 남도 지역의 공동체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경상도 지역의 ‘풋굿’은 세벌 논매기가 끝난 후 백중에 행해지는 농민들의 잔치이다. 특히 안동 지역에서는 풋굿을 통해 마을의 화합을 다지고 풍년을 기원하는 다양한 의례와 놀이가 펼쳐졌다. 밀양 감천의 백중놀이에서는 힘겨루기인 ‘힘발림’을 통해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머슴을 뽑아 우대하는 풍습이 전해진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백중보다는 칠석에 두레먹기가 더욱 성행했다. 하지만 백중 역시 머슴날로 인식되어 머슴들에게 새 옷을 해주고 휴가를 주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꽁배술’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는데, 이는 두레에서 심부름하는 청소년인 ‘꽁배’가 성인이 되어 두레의 정식 구성원이 되고자 할 때 백중날 술을 내어 허락을 받는 의례이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호미걸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전해진다. 이는 호미나 농기구를 농기의 줄에 매달아두는 의례로, 농사일의 마무리를 기념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호미걸이는 주로 시원한 정자나무 아래나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곳에서 행해졌으며, 백중놀이와 함께 진행되기도 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김매기를 끝내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질먹기’라는 풍습이 있었다. 백중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김매기 노동의 결산을 하고, 주인집에서는 머슴들에게 특별한 상을 차려주었다.

이 외에도 전라북도 고창군 상평에서는 품앗이를 결정하기 위해 백중날 ‘들독(들돌)’을 들어보는 풍습이 있었다. 들독을 들지 못하면 품앗이를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는 백중이 단순한 휴식일이 아닌, 공동체의 노동력 분배와 관련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백중은 각 지역의 자연환경, 사회 구조, 문화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전승되어 왔다. 이러한 지역별 백중 풍습은 한국 전통 문화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 #백중의_다채로운_얼굴, #흥겨운_농촌_축제, #조상을_기리는_마음으로 이어온 전통

결론적으로 백중은 #백중의_다채로운_얼굴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음력 7월 15일에 행해진 중요한 명절이었고, 농민들의 #흥겨운_농촌_축제_백중놀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고 노동의 고됨을 잊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조상을_기리는_마음_망혼의례를 통해 가족과 조상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통적인 풍습이었다. 비록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두레와 같은 전통적인 농업 공동체가 사라지고 백중의 의미도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밀양백중놀이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그 전통이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다. 백중은 단순한 과거의 풍습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소중한 유산이며, 앞으로도 그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며 보존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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