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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산신제는 한국의 대표적인 동제로서, 신성한 제관 선정과 금기 재계 과정을 거쳐 엄숙하게 진행되며, 마을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산신에게 드리는 중요한 의례입니다. 산신제(山神祭)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산을 신성하게 여기고 숭배해 온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을 공동체의 평안과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기 위해 산신을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정기적으로 거행하는 제의입니다. 산제, 산제사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신앙 형태 중 하나입니다.

 

신성한 제관 선정과 금기 재계 과정: 부정을 피하고 정성을 다하다

산신제는 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의례인 만큼, 제사를 주관하는 제관(祭官)을 선정하는 과정부터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집니다. 제관은 제당 제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제사를 이끄는 제관장과 축문을 읽는 축관, 제물을 준비하고 관리하는 화주(또는 공양주) 등을 포함합니다. 제관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정(不淨)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집안에 상사(喪事)가 있거나 환자 또는 임산부가 있는 사람, 살생을 한 경우, 부인의 월경 등이 부정의 범주에 해당됩니다. 또한, 제관은 생기복덕(生氣福德)한 사람, 즉 하늘의 운에 거스르지 않고 복이 많은 사람으로 선정됩니다. 이러한 기준은 신성한 산신(천신)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을 뽑기 위한 전통적인 문화적 장치입니다. 경북 문경시 동로면 수평리 산제의 경우에는 상당 제관, 공양주, 하당 제관 각 1명과 희생 처리 과정을 도울 사람 2명을 선정했습니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들은 제례를 치르기 전 일정 기간 동안 금기(禁忌)를 지키고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신성화 과정을 거칩니다. 금기는 제당과 그 주변, 그리고 제관의 집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기간 동안 제관은 마을 밖으로 함부로 출입할 수 없으며, 마을 주민들 또한 제관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부부 관계를 피하고, 음식 섭취량을 줄이며, 깨끗하게 목욕하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유지하는 등 스스로 신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냇물에서 행하던 전통적인 목욕재계가 간편하게 세수나 집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대체되는 등 그 엄격함이 다소 약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희생과 새옹밥이 특징적인 제당 제의: 정성껏 마련한 제물로 신에게 소망을 전하다

산신제의 제당 제의에는 희생(犧牲)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과거에는 주로 소[牛]가 희생 제물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도축법이 시행되면서 소 대신 돼지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당 제의에서는 소나 돼지를 잡아 희생 의례를 치르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소의 머리나 발 등 특정 부위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희생물의 일부분을 통해 전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는 전통적인 관습과 일치합니다. 희생 의례는 산신을 모시는 상당(上堂)보다는 희생물을 처리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샘이 있는 하당(下堂)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백산 산신제와 같이 제관이 소를 산제당에 데려다 놓고 뒤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내려오는 독특한 의례도 있습니다.

 

희생 의례는 질러대는 비명 소리나 제당 주변에 흩뿌려지는 선혈 등을 통해 제당을 정화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희생 의례가 끝난 후에는 희생물의 고기를 삶아 제상에 올릴 제수를 정성껏 마련합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서는 희생물을 해체하는 순서대로 산신당에 진설하는데, 머리 부분과 발 부분은 불에 구워서 올리는 번제(燔祭)의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수평리의 산신제는 상당과 중당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상당에서는 상당 제관이 야외용 밥솥인 새옹에 밥을 지어 올리는 의례를 행합니다. 새옹에 밥을 지어 올리는 것은 산신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이때 밥물이 넘치면 정성이 부족하다는 증거로 여겨 복을 받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에 솥뚜껑을 열어보거나 밥물이 넘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수평리의 중심 제의는 중당에서 유교식으로 진행되며, 하당 제관이 준비한 희생 제물을 중당으로 가져와 진설한 후 상당 제관이 헌작(獻爵)과 독축(讀祝)을 하고, 공양주와 하당 제관이 절을 하고 소지(燒紙)를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하당 제의는 중당의 제수를 지게에 지고 옮긴 뒤 마을을 향해 재배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제관들은 마을로 내려오기 전에 제수로 사용하고 남은 고기와 술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을 행하는데, 이는 일반 주민들이 참여하는 음복과는 구별되는 비의(秘儀)로 여겨집니다.

 

음복과 마을 회의로 마무리되는 산신제: 공동체의 화합과 번영을 다짐하다

수평리와 읍내리의 주민들은 제관들이 제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맞이한 후 잠자리에 듭니다. 음복은 보통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제관의 집으로 모여 시작됩니다. 음복은 신이 드신 음식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그 축복을 받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양은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야 하며, 남은 음식을 개나 짐승에게 주는 것은 금기시됩니다. 이는 신성한 음식을 함부로 다루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음복이 진행되는 동안 제관들은 제사에 사용된 경비를 계산하고 그 결과를 모든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공지합니다.

 

음복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위를 넘어, 신의 축복을 받는 신성한 공간에서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해 동안 마을의 공동 사업이나 품삯, 그리고 다양한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과거에는 음복을 행하는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 주민들이 대규모 줄다리기를 통해 화합을 도모하고 풍요를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마을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읍내리의 경우, 본래 지역 주민들의 산신제당을 관에서 수용하여 성황사로 개칭했다가 해방 이후 주민들이 주도권을 되찾아 현재는 성황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지만, 단종 복위 운동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산신제에 투영하여 제사를 지내는 독특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산신제는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동제로서, 신성한 제관 선정과 금기 재계를 통해 정성을 다하고, 희생과 새옹밥 등의 특별한 과정을 거쳐 산신에게 소망을 전달하며, 음복과 마을 회의를 통해 공동체의 화합을 다지는 중요한 풍습입니다. 산신제에 담긴 공동체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 그리고 자연을 숭배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깊은 의미를 전달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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