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 명절 중 하나인 중양절은 #겹치는양수의의미중양절의다채로운이름을 지니고 있으며, 예로부터 #높은곳에오르며국화를즐기다등고와상국의 풍습이 전해져 왔다. 또한, 가을 수확의 계절에 #가을걷이의감사조상에게올리는정성을 담아 조상 숭배 의례를 행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음력 9월 9일, 달과 날짜의 숫자가 같은 길일(吉日)인 중양절은 단순한 명절을 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조상에게 감사하며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는 다채로운 의미를 지닌 한국 전통 사회의 중요한 풍습이었다. 이 글에서는 제시된 자료를 바탕으로 중양절의 다양한 이름과 유래, 대표적인 풍습인 등고와 상국, 조상 숭배 의례, 그리고 농경 사회에서의 의미 등을 한국 전통 관습의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겹치는양수의의미중양절의다채로운이름: 숫자에 담긴 특별함과 다양한 명칭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모두 홀수인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중일(重日) 명절은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에도 해당하지만, 특히 9월 9일을 가리켜 중양이라고 하며, ‘중구(重九)’라고도 부른다. 이는 양수가 겹쳐 더욱 길하다고 여겨진 데서 비롯된 한국 전통 사회의 숫자 관념을 반영한다. 또한, 일부 지방에서는 중양절을 ‘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지역 방언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보인다.
중양절은 국화가 만개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국화절(菊花節)’이라고도 불린다. 가을의 대표적인 꽃인 국화는 중양절의 풍류를 즐기는 데 중요한 요소였으며, 국화주나 국화전과 같은 시절 음식을 통해 중양절의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국화를 감상하는 풍습을 반영하여 ‘상국일(賞菊日)’이라고도 불렸다.
중양절의 유래는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에서도 음력 9월 9일은 중요한 전통 절일로 여겨져 왔으며, 한나라 시대부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여겨지기도 했다. 중양절과 관련된 대표적인 설화로는 동한 시대의 도인 비장방과 항경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비장방은 항경에게 9월 9일에 집안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니 가족과 함께 수유를 담은 주머니를 차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항경이 그대로 행한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집에서 키우던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는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오르는 등고 풍습의 유래를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시대부터 중양절을 기념하는 기록이 나타난다. 고려 시대에는 국가적인 향연이 열리기도 했으며,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세종대왕이 3월 3일과 함께 중양절을 중요한 명절로 공인하고,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양절로 옮겨 시행하기도 했다. 또한,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 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념하기도 하였다. 이는 중양절이 한국 전통 사회에서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명절이었음을 보여준다.
#높은곳에오르며국화를즐기다등고와상국: 자연 속에서 풍류를 만끽하는 풍습
중양절의 대표적인 풍습 중 하나는 높은 곳에 오르는 ‘등고(登高)’이다. 이는 앞서 언급된 중국 설화의 영향도 있지만, 가을의 맑고 높은 하늘 아래 자연을 즐기며 건강을 기원하는 한국 전통 사회의 풍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 사람들은 중양절에 남산이나 북악산과 같은 주변의 높은 산에 올라가 음식을 먹고 즐겁게 놀았다고 전해진다. 이는 단순히 산에 오르는 행위를 넘어,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감상하고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의미를 지닌다.
등고와 함께 중양절에는 국화를 감상하는 ‘상국(賞菊)’의 풍습도 빼놓을 수 없다. 활짝 핀 국화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국화주를 마시거나 술잔에 국화꽃을 띄워 마시는 ‘범국(泛菊)’ 또는 ‘황화범주(黃花泛酒)’를 즐겼다. 국화는 장수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져 국화주를 마시는 것은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또한, 국화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국화전(菊花煎)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이는 중양절의 대표적인 시절 음식으로 손꼽힌다.
중양절에 마시는 국화주는 국화꽃을 술에 담가 숙성시킨 술로, 은은한 국화 향과 맛이 일품이다. 국화전은 노란 국화꽃잎을 찹쌀 반죽 위에 올려 지진 떡으로, 보기에도 아름답고 맛도 좋아 중양절의 흥취를 더했다. 이 외에도 잘게 썬 배, 유자, 석류, 잣 등을 꿀물에 탄 화채(花菜)도 중양절에 즐겨 먹던 음식 중 하나였다. 이러한 시절 음식들은 중양절의 풍요로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함께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은 중양절의 아름다운 풍경과 풍류를 즐기며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시주(詩酒)’의 모임을 갖기도 했다. 고려 말의 학자 목은 이색은 중양절에 술을 마시며 도연명의 운치를 깨달았다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는 중양절이 단순히 먹고 마시는 날을 넘어,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고 예술 활동을 즐기는 날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가을걷이의감사조상에게올리는정성: 풍요로운 수확에 감사하는 조상 숭배 의례
중양절은 가을 수확을 앞두고 조상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조상 숭배 의례가 행해지는 중요한 날이기도 했다. 추석에 햇곡식으로 제사를 지내지 못한 집안에서는 중양절에 뒤늦게 조상에게 햇곡식을 올리는 천신(薦新)을 행했다. 떡을 빚고 집안의 으뜸신인 성주신에게 밥을 올려 차례(茶禮)를 지내는 곳도 있었다. 특히 전라남도 고흥 지역에서는 중양절에 시제(時祭)를 지냈는데, 이를 ‘귈제’라고 불렀다. 이는 가을 수확의 풍요로움을 조상과 함께 나누고 감사를 표하는 한국 전통 사회의 중요한 의례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3월 3일 삼짇날과 함께 9월 9일 중양절이 사시제(四時祭)의 중요한 날로 자리매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영남 지방에서는 부조묘(不祧廟)를 모신 집안들을 중심으로 중양절에 불천위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4대가 지나면 신주를 묘에 묻는 유교식 제례와 달리, 특별한 공훈이 있는 조상의 신주를 사당에 영구히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중양절에 햇곡식을 마련하여 조상에게 처음으로 바치는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과거에는 마을마다 혹은 두세 개 마을에 한 명씩 동네 단골 무당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연말에 이장에게 세금을 내듯이 중양절이 되면 이들에게 시주를 하기도 했다. 이는 무당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풍습이었다.
#농경사회의결실축하와기원의례: 공동체의 화합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
중양절은 농경 사회에서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고 풍요로운 수확을 기대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남자들은 그해 논농사를 결산하는 추수를 하고, 여자들은 마늘을 심거나 고구마를 수확하는 등 농사일로 바쁜 시기를 보냈다. 퇴비 만들기, 논물 빼기, 논 피사리 등은 남녀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지방에 따라서는 목화를 따거나 콩, 팥, 조, 수수, 무, 배추와 같은 밭작물을 파종하고 수확하기도 했다. 이처럼 농번기였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중양절이라고 하여 특별한 행사를 벌이기보다는 평상시와 똑같이 보내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양수가 겹치는 길일이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는 이날을 즐겼다. 앞서 언급한 등고 풍습이나 국화전 만들어 먹기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중양절에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을 베풀었는데, 이는 장수를 상징하는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과 함께 중양절이 경로(敬老) 사상을 실천하는 날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 시험을 실시한 것은 젊은 인재를 등용하여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던 조선 시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에서는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허락하고 형 집행을 금하는 금형(禁刑)을 시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백성들의 휴식을 보장하고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전통적인 통치 철학을 반영한다.
결론적으로 중양절은 #겹치는양수의의미중양절의다채로운이름처럼 음력 9월 9일, 양수가 겹치는 특별한 날로 여겨졌으며, #높은곳에오르며국화를즐기다등고와상국의 풍류를 즐기고, #가을걷이의감사조상에게올리는정성을 통해 풍요로운 수확에 감사하며 조상을 기리는 한국 전통 사회의 중요한 명절이었다. 또한, #농경사회의결실축하와기원의례로서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다소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삶과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소중한 전통 문화유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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