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음력 3월 3일은 우리 세시풍속에서 매우 중요하고 길(吉)한 날로 여겨졌습니다. 바로 삼짇날인데요. 예로부터 이날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고 하여 '제비오는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봄의 전령, 제비와 함께했던 삼짇날의 다양한 속신과 풍습들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제비오는날, 삼짇날이란?
삼짇날은 매년 음력 3월 3일을 가리키는 절일(節日)입니다. 숫자 '삼(三)'이 겹치는 날이라 하여 삼삼일(三三日)이라고도 불렀으며,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철새인 제비가 강남(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돌아온다고 믿어 제비오는날이라는 정겨운 이름으로도 통했습니다.
삼짇날은 따뜻한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리는 날이자, 한 해의 길흉을 점치고 봄을 만끽하며 평안을 기원하는 다양한 풍습이 행해졌던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삼짇날
삼짇날은 그 의미와 풍습의 다양성만큼이나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 답청절(踏靑節): 푸른 풀을 밟으며 봄을 즐기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 삼삼일(三三日), 삼샛날: 숫자 '삼'이 겹치는 날임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 삼진일(三辰日), 상사일(上巳日), 상제(上除), 원사일(元巳日): 옛 문헌에 기록된 삼짇날의 다른 명칭들입니다.
- 여자의 날: 삼짇날에 여성들이 함께 모여 화전놀이 등을 즐겼던 풍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 계음일(禊飮日): 물가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음식을 먹으며 액을 막는 풍습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 중삼일(重三日): '삼'이 거듭된다는 뜻입니다.
- 답백초(踏白草): 푸른 풀이 돋아난 들판을 밟는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이름들은 삼짇날이 지닌 봄맞이, 놀이, 정화, 길상 등 복합적인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봄의 전령, 제비에 대한 속신
삼짇날을 제비오는날이라고 부를 만큼, 제비는 이 절기와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다양한 속신(俗信)의 대상이었습니다.
제비의 상징과 길조(吉兆)
제비는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봄의 전령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매년 같은 번식지로 돌아오는 강한 귀소성을 지닌 철새인 제비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제비는 또한 여러 가지 긍정적인 상징을 지녔습니다.
- 귀함과 아름다움: 천녀(天女)나 귀녀(貴女)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 비와 풍요: 비를 오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믿어져 농경 사회에서는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 부귀와 장수: 제비가 집에 복을 가져다주어 부귀를 누리고 장수하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제비를 이로운 새, 즉 익조(益鳥)로 여긴 탓에 집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는 것은 매우 길(吉)한 징조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제비가 둥지에서 새끼를 많이 낳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집안이 번성하여 부귀해진다고 믿어, 익조의 다산을 길조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겼습니다. 또한 삼짇날 마을에서 제비를 가장 먼저 본 사람은 그 해 운수가 좋아 꿩알을 줍는다는 속신도 있었습니다.
제비의 행동으로 점치는 앞날
제비의 모습이나 행동을 관찰하여 날씨나 운수를 점치기도 했습니다.
- 날씨 예측: 제비가 높이 날아다니면 맑고 쾌청한 날씨를, 낮게 날아다니면 비가 내릴 것을 예고한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계속 지저귀며 낮게 날면 태풍이나 긴 장마가 올 징조로 여겼습니다.
- 몸가짐 예측: 삼짇날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제비를 보면 그 해 일년 내내 몸이 아주 가볍고 날쌔게 생활하며,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는 속신이 있었습니다. 이는 재빠르게 날아다니는 제비의 움직임에서 비롯된 상징적인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비오는날에 즐겼던 봄맞이 풍습
삼짇날은 제비 관련 속신 외에도 따뜻한 봄을 맞이하며 행해졌던 다양한 풍습들이 풍성했습니다.
화전놀이와 시절음식
삼짇날의 대표적인 풍습은 화전놀이입니다. 여성들이 산과 들로 나가 진달래나 쑥 같은 봄꽃을 뜯어 찹쌀가루와 함께 지져 화전(花煎)을 만들어 먹으며 봄을 만끽하는 놀이였습니다.
화전 외에도 화면(花麵)(꽃잎을 띄운 국수)이나 쑥을 넣어 만든 쑥떡(艾餠) 등 봄의 기운이 담긴 시절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러한 음식들은 겨우내 부족했던 영양을 보충하고 봄의 생기를 얻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봄놀이와 다양한 활동
삼짇날은 본격적으로 야외 활동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푸른 들판을 밟는다는 뜻의 답청절이라는 이름처럼 들판에 나가 봄나물을 캐거나 새싹을 밟으며 봄을 즐겼습니다.
남자들은 활쏘기 대회(射會)를 열어 심신을 단련하고 친목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제비가 돌아오기 전 둥지를 손보아 제비를 맞이하는 제비집 손보기(전라남도) 풍습이나, 앞서 언급된 꿩알 줍기(제주도)와 같은 활동도 행해졌습니다. 경상남도 일부 지역에서는 용왕에게 제물을 바치며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용왕 먹이기 풍습도 있었습니다.
몸을 깨끗이 하는 풍습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삼짇날에는 이러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며 몸을 깨끗이 하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특히 충청도 지역에서는 이날 머리감기를 하며 한 해 동안의 나쁜 기운을 씻어내고 건강과 복을 기원했습니다.
제비오는날이 지닌 의미
제비오는날, 즉 삼짇날은 단순히 날짜를 세는 것을 넘어 우리 조상들이 자연의 변화와 얼마나 밀접하게 살았는지, 그리고 다가오는 계절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어떻게 풍습으로 표현했는지를 보여주는 날입니다.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처럼 새로운 생명력이 움트고 활동이 시작되는 봄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풍습과 속신을 통해 한 해의 무사함과 풍요를 기원했습니다. 제비가 가져다주는 길상의 의미를 믿고, 자연의 징후를 통해 앞날을 점치며 삶의 활력을 얻었던 삼짇날은 우리 민족의 자연관과 소망이 담긴 소중한 문화적 기록입니다.
참고문헌
최래옥. 한국 민간 속신어사전. 집문당, 1995년
韓國文化상징사전1. 東亞出版社, 1992년
김종대. 우리문화의 상징세계,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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