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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명절인 정월 대보름은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다양한 풍습으로 가득한 날입니다. 달빛 아래 펼쳐지는 다채로운 놀이와 함께, 특별한 의미를 담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복쌈입니다. 밥을 김이나 취와 같은 나물에 싸서 먹는 단순한 행위이지만, 그 속에는 풍요로운 수확과 행복한 삶을 염원하는 한국인의 깊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이 복쌈을 민속학과 인류학의 심층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여 그 정의, 유래, 지역적 변이, 그리고 문화적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복쌈이라는 전통 음식을 통해 한국인의 삶의 지혜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1. 복쌈의 정의와 어원: 복을 싸서 먹는다는 상징적 행위

정의: 복쌈은 정월 대보름날,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로 김이나 취와 같은 나물에 밥을 싸서 먹는 풍습을 말합니다. '쌈'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엇인가를 감싸는 행위를 의미하므로, 복쌈은 말 그대로 복(福)을 싸서 먹는다는 직접적인 뜻을 지닙니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복을 기원하고 소망하는 인간의 간절한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복쌈은 그 의미와 형태에 따라 복과(福裹), 박점(縛占), 노적쌈(露積-), 볏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어원: 복쌈의 다양한 명칭들은 그 의미와 형태를 반영합니다. '복과(福裹)'는 복을 감싼다는 의미로, 밥을 김이나 나물로 싸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나타냅니다. '박점(縛占)'은 묶어서 점친다는 의미로, 쌈의 형태가 묶음과 비슷하다는 점과 풍년을 점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노적쌈(露積-)'은 가을에 곡식을 쌓아둔 노적가리처럼 밥을 쌈으로 만들어 쌓아두는 형태를 의미하며,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볏섬'은 벼를 묶어 놓은 단위를 의미하며, 밥 한 쌈을 볏 한 섬에 비유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 사회의 염원을 나타냅니다.

2. 역사적 유래와 변천: 문헌 기록을 통해 본 복쌈의 흔적

복쌈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의 세시풍속집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정월 대보름에 배춧잎과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 풍습을 '복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쌈의 기원이 최소한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보여줍니다. 또한, 중국의 풍속을 기록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인일(人日, 정월 7일)에 일곱 가지 나물을 캐다가 국을 끓여 먹는 풍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동국세시기』에서는 이러한 풍습이 정월 대보름으로 옮겨져 겨울철에 부족한 나물의 맛을 즐기려는 의미로 변화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풍습의 의미와 시기가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렬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해의(海衣, 김)에 마제채(말굽나물) 등을 싸서 먹으며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하여 이를 '박점' 또는 '복쌈'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복쌈이 단순한 음식을 넘어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 의례의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시사합니다.

3. 지역별 복쌈 사례: 다양한 재료와 풍습 속에 담긴 공동체의 염원

복쌈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어 왔으며, 각 지역의 특색과 문화가 반영된 흥미로운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신곡6리 은행정마을: 이곳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찹쌀로 지은 백반에 김을 싸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를 복쌈이라고도 하고, 볏섬이라고도 부르며 풍년을 기원합니다.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 천안시 병산면 병천리, 부여군 은산면 장벌리 장재울: 이 지역에서는 보름날 아침에 흰밥을 지어 김에 싸 먹는 풍습이 일반적입니다. 김쌈을 볏섬으로 여겨 많이 싸 먹으면 그해 농사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부여군 은산면 장벌리에서는 김쌈을 하나 먹을 때마다 볏섬을 하나씩 하는 것으로 여겨, 아침 식사 후 친구들끼리 서로 먹은 김쌈의 개수를 물으며 풍년을 기원하는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내초리: 이곳에서는 보름날 아침밥으로 나물을 먹을 때 김쌈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칼로 자르지 않은 통김을 그대로 사용하여 손으로 대충 잘라 밥을 싸 먹는데, 칼로 김을 자르면 벼 모가지를 자르는 것과 같다고 여겨 금기시했습니다. 김쌈 하나하나를 볏섬끄랭이(볏섬을 세는 단위)라고 생각하며, 많이 먹을수록 풍년이 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이곳에서는 대보름날 찰밥을 지어 김에 싸서 쌓아두고 이를 '노적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가을에 곡식을 쌓아둔 노적가리처럼 복을 쌓아두고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이곳에서는 오곡밥을 지으면 우선 윗목의 성주신 앞에 담아놓고, 장독대에는 '노적쌈'이라고 하여 오곡밥을 김에 싸서 놓아둡니다. 노적쌈을 많이 쌓을수록 가을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가인마을, 장흥군 장평면 어곡리 어곡마을,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마을: 이 지역에서는 보름날 아침에 보름밥을 먹을 때 밥을 김에 싸서 식구들끼리 나누어 먹으며 이를 '노적쌈'이라고 불렀습니다. 노적쌈을 많이 쌓아야 그해 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습니다. 장흥군 장평면 어곡리에서는 오곡밥 김쌈을 짚더미나 광 등 여러 군데 놓아두고 이를 '노적'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에서는 찰밥 김쌈을 차례상, 성주, 샘, 창고, 쌀독 등 집안 곳곳에 두어 곡식을 쌓아둔 것과 같은 효과를 내어 풍년을 기원했습니다.

이처럼 복쌈 풍습은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농경 사회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또한,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함께 풍년을 기원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4. 복쌈의 민속학적 의미: 풍요 기원과 공동체 유대 강화

민속학적으로 복쌈은 정월 대보름이라는 시기에 행해지는 다양한 풍농 기원 의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밥과 김이라는 기본적인 식재료를 사용하여 복을 싸 먹는 행위는 단순한 음식 섭취를 넘어, 풍요로운 한 해를 소망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김쌈을 볏섬이나 노적에 비유하며 많이 먹고 쌓는 풍습은 농경 사회에서 쌀이 가지는 중요성과 풍년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반영합니다.

또한, 복쌈은 가족 구성원이나 마을 주민들이 함께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과정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소속감을 높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특히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참여하는 의례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 또한 수행했습니다.

5. 복쌈의 인류학적 해석: 음식 문화와 상징 체계

인류학적으로 복쌈은 음식 문화가 단순한 생존의 수단을 넘어, 사회적 의미와 상징 체계를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밥은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며, 김과 같은 해산물이나 나물은 자연의 풍요로움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재료들을 함께 싸서 먹는 행위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나타내며,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인간의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밥을 김에 싸서 쌓아 올리는 행위는 수확한 곡식을 쌓아두는 노적가리를 연상시키며, 이는 풍요의 상징성을 극대화하는 시각적인 표현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유사한 것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유감주술(Sympathetic magic)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즉, 풍성하게 쌓인 밥쌈을 통해 실제 곡식도 풍성하게 수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것입니다.

정월 대보름에 먹는 복쌈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풍요로운 한 해를 기원하는 한국인의 간절한 염원과 지혜가 담긴 소중한 전통 풍습입니다. 밥과 김이라는 소박한 재료를 통해 복을 싸 먹고, 볏섬이나 노적에 비유하며 풍년을 기원했던 조상들의 마음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복쌈 풍습은 한국인의 농경 문화, 공동체 의식,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전통적인 가치관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며, 앞으로도 그 의미를 되새기며 계승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참고 문헌

  • 한국 민속의 세계5, 2001년
  • 충청남도 세시풍속, 2002년
  • 전라남도 세시풍속, 2003년
  • 김태곤 외. 瑞山民俗誌 上. 瑞山文化院, 1987년
  • 전라북도 세시풍속, 2003년
  •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全羅南道 編, 1969년
  • 한국민속대사전2. 민족문화사, 1991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0, 1991년
  • 서산시지, 1998년
  • 김태곤. (1996). 한국 민속학 개론. 집문당.
  • 최인학. (2000). 문화인류학의 이해. 일조각.
  • 임재해. (2005).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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